세상 바라보기.
2009. 12. 28. 14:53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에 대한 조그마한 기억.
미국에서의 소소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제일 처음 시작한 것이
SK텔레콤의 대학생 자원봉사단인 써니였다.
그곳에서 하이티처라는 공부방의 아이들에게 과외선생님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써니"라는 프로그램의 잘 짜여진 조직의 힘에 반해 블로그 기자단이라는 봉사 프로그램까지 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온갖 정부부처에서 블로그 기자단을 모집하는 것을 보면
길거리 보도블럭 뒤집는 비용까지 끌어모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본다.
그렇게 블로그 기자단을 한창 하고는 2기를 뽑는 면접에 우연찮게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보았던 광경을 잠시 이야기 할까 한다.
한 지원자가 와서 앉고,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하다가
A : 저는 MBC의 아나운서가 되고 싶습니다.
B : 왜 MBC의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거죠?? KBS나 SBS도 있는데...
A : KBS는 대통령에게 넘어갔고, SBS는 빈대 같잖아요.
B : ...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논지였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우리는 국사라는 과목을 중학교때와 고등학교때 배운다.
그리고 그 과목의 제일 처음에는 국사라는 단어가 가진 2가지 의미를 함께 배우곤 한다.
사실의 국사와 그 사실을 적은 사관이 담긴 국사.
위의 아나운서 지원자가 만약 MBC의 아나운서가 된다면 어떤 이야기가 뉴스에 나올 수 있을까?
뭐...
충분히 이해는 간다.
나역시 세상과 정부와 여당의 무능함에 할 말을 "못"하고 "안"하면서 살고 있으니깐.
하지만 나름 "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백"만 가지고 논한다면 사람들은 면역력이 약해져서 약간의 "흑"에도
쓰러질 것이다.
적어도 "흑"을 싫어는 할만정 배척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 아버지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A : 넌 시야를 넓게 가질 필요가 있어.
B : 어떤 시야요??
A : 어떤 정책이 추진 된다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진행 되는거야.
무조건적인 선과 악은 있을 수 없어.
너희들이 정부의 정책을 싫어하듯 우리들도 정부가 잘한다고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아냐.
세상을 386, 나이 많이 먹은 사람, 그리고 젊은 사람으로 나눠서 이념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해.
조중동을 보는 사람이 나쁘다고 하지만, 그 중에는 조중동을 비판하기 위해 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야.
B : 그럼 왜 나이드신 분은 386이 나라를 말아먹었다고 생각하고, 386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걸까요?
A : 꼭 그렇지는 않아.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지만 결국 대선에서 그의 표는 50%잖아.
침묵하고 있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50%라는 거야.
B : 그 사람들이 계층적으로 구분되어 있다면요?
A : 혹시 그 사람들이 왜 그를 좋게 기억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니??
결국 이야기의 끝은 그 기억이 주는 추억과 정책의 반작용에 대한 것으로 끝났던 것 같다.
종종 아버지는 그 정책이 좋다 안좋다를 떠나서,
그 정책을 만들때는 그 것만이 "최선"이기에 그것을 비난하거나 폄하하면 안된다라는 소리를 하신다.
그 시대마다의 가치관과 아젠다, 사상과 시대정신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대통령에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그것이 최선이든 아니든 일말의 편견없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스스로 그 정책의 우수함을 평가할만큼 우리나라에는 "대졸자"가 많지 않은가...
역사적으로도 왕좌에 올라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곧 세상인양 민중을 바라보는데 실패했었다.
그리고 자신이 보았던 민중이 진실된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것이 연출된 장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진짜 사람, 그리고 진짜 세상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 또한 언론의 역할이고 "기자"의 역할이 아닐까?
그러기에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진 진짜 "기자"를 기대하고, 기다린다.